# 보르도의 도서관들
 보르도에 도착해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모두들 쉬는 주말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 집에서 놀자니 가재도구와 노트북 뿐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찍기에도 이골이 나려는 무렵. 한국에 있을 때 심심할 때면 도서관에 놀러가던게 생각났다. 여기도 당연히 도서관이 있을 거란 생각에 무릎을 탁!

 샤또 투어 이야기에서도 썼지만 보르도는 아끼뗀 주의 주도다. 매우 큰 도시라는 이야기. 보르도 중심가에 우리나라로 치면 시립도서관 정도 크기의 MERIADECK(메리아덱) 도서관이 있고, 동네마다 구립도서관 크기의 작은 도서관이 9개, 평일에는 이동도서관도 열린다. 회원가입을 하면 도서 15권, 음반 15장, DVD 5장, CDrom 5개를 한달 동안 대여할 수 있다. 연장은 2주 단위로 두번까지 가능! 넉넉하다. 

 가입비는 9.5유로ㅠ. 만 26세 이상 부터는 12.5 유로. 도서관 내부 열람은 가입할 필요가 없다. 프리 와이파이도 빵빵! (유럽 여행할 때 맥도날드만 찾고 왜 도서관 생각은 못했나 모르겠다) 9월부터 보르도 대학부설 어학원 수업을 들으면 대학도서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처음에는 가입을 망설였다. 하지만 할일 없는 주말 DVD를 잔뜩 보려는 꿈에 부풀어 프랑스 교보문고인 fnac에서 dvd롬을 구입하고 도서관 회원 가입도 했다. 영어나 프랑스어 자막/더빙 뿐 인 것은 함정 ㅎㅎ

-가입을 위해 필요한 서류-
1. 산분증(여권, 체류증 등)
2. 거주 증명서
3. 가입비


# 우리동네 도서관 Grand Parc
 나는 트람 C선의 Grand Parc 역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다. 구글링해보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은 그랑팍 도서관.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뒤에서 소개하게 될, 시내 중심가의 메리아덱 도서관 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고 장서도 적은편이다. 그치만 아늑한 동네 사랑방 느낌. 한국에 있을 때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노트북 두들기고 책보고 하던 것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줘서 종종 찾는다.
 이곳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예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DVD들을 골랐다. 기분내려고 마그리트 뒤라스의 연인(L'amant)도 빌려보고 ㅎㅎ. 긴 글을 읽는 건 아직 어렵기 때문에 주로 사진집이나 그림책을 빌려오는 편이다.


 

 DVD를 고르다 문득 고개를 드니 무슨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언론의 자유는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때 쇠하고 만다." 책이 있는 또 다른 벽면, "거대한 질서 속에는 항상 작은 무질서함이 있게 마련이다.-라이프니츠". 가벼운 격언이지만 한번 쯤 되새겨 보게된다. 음.. 도서관다운 디자인이다. 그러고보니 홈스테이집 내 방에도 한 쪽 벽면에 글귀가 새겨져있다. "인생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살지 않을 때 쉽게 잃어가는 것인 고로…(Car la vie est un bien perdu quand on ne l'a pas veçu comme on aurait voulu…)" 별 뜻 없이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인테리어지만, 보르도에 도착하고 처음 한 두주 우울해하며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문득 발견하고 정신 차리게 해준 고마운 글귀다. 

 



# MERIADECK 도서관과 지갑 분실 사건

 트램 A선 Meriadeck 역에 내려 조금 걸으면 cours du maréchal 거리에 메리아덱 도서관이 보인다. 크다. 엄청 크다. 도서관이라고 자전거 주차장 덮개도 유명한 책의 한페이지로 장식 돼 있다. 날이 좋아 유리 건물이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 입구에 들어서면 보안요원이 가방 검사를 한다. 주로 이용 하는 층은 DVD가 있는 2층이나 공부방이 있는 3층.

 

- 책보고 있으면 구름 이동에 따라 해가 났다 가렸다 반복하는데, 고즈넉해 마음이 편해진다. 너무 할머니 같나?ㅋㅋ 

- 지난 1월 샤를리앱도 테러사건이 일어나고 시간이 좀 흘렀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구,"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

 

- DVD 관람실, iPAD도 완비!

- 보르도 도서관은 각종 문화행사를 구비하고 있다. 사진전 부터 미니 음악회까지. 오늘은 백발 할아버지의 쉐낏쉐낏 디제잉.


 메리아덱 도서관을 소개하고 싶어서 마음먹고 카메라를 챙겨간 날이었는데, 덕분에 짐이 많아 정신없는 바람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멘붕..!!!!!!!! 구석에 있던 검색대 사용하고 두고갔다가 30초도 안돼 뛰어 돌아 갔는데 이미 사라져 버린 지갑.. 당황하니까 갑자기 생활불어가 엄청 빠르게 나왔다. 감시카메라 확인 불가하냐는 등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엉뚱한 요구로 쪼끄만 아시아 여자애가 묻고 또 물으니 직원들이 0층 안내 데스크에 바래다 줬다. 다행히 누군가 맡기고 간 내 지갑.. 물과 몇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아직 은행 계좌를 열지 못해서 당장 카드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었기 때문에.. 교통권도 들어있고 휴. 이놈의 정신머리.
 보르도는 살만한 동네구나.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트램 안. 지갑을 가만히 보니 동전을 제외한 현금이 몽땅 사라졌다! 20유로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갑 깜빡한 몇초의 대가가 몇일치 식료품 비라니. 어떻든 찾아서 다행인 것을 그새 마음이 달라져 지갑 집어간 사람이 미워졌다.

 홈스테이집이 급하게 바뀌어서인지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경써주지 않을때가 많다. 초반에는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친하게 지내려고 저녁 식사 시간을 맞춰보기도 하고 먼저 말을 건내기도 했지만 그만 포기.. 빨래라도 제때 돌려주고 설거지 미루지만 않아도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고양이가 아무때나 방문열고 들어오거나 날뛸때마다 옆방 사는 딸이 벤쀠까!!!!!!하고 소리쳐대는데, 이제는 녹음해뒀다가 모닝콜로 써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넘기게 되었다. 초반부터 불편한 홈스테이 생활도 앞으로의 7개월에 면역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지갑 사건도 잃은 돈은 아깝지만 정신 똑띠 챙겨서 더 큰 손해보지 말라는 신호라 여기며 넘기기로 했다.




# 알리앙스 프랑세즈 반배정과 대체수업

 보르도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입학하기 전 반배정 문제지를 풀어 보내고 처음으로 배정 받은 반은 B1.2반! B1은 이미 통과했지만 문법과 단어, 독해력으로 승부를 봤던 시험이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도 말하기나 듣기, 쓰기 실력이 완벽하게 B1 정도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별 불만 없이 공부하고 있다.


 이번달에 B1.2반에 배정된 선생님은 파리에서 나고 자라 대학도 파리에서 나온 파리지엔느, 나타샤!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경력이 짧아서인지 강의력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 공부할때 대학교 원어 교수님들 강의력이 좋아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튼, 나타샤가 휴가 떠나기 전 마지막 수업을 'Artisan(수공업 장인)의 Atelier(아뜰리에)에 방문해 인터뷰하고 조별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대학에서 조과제 할때면 이런저런 이유로 골머리 앓기가 일쑤라 나타샤의 대체수업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치만 막상 아뜰리에를 방문하니 생소한 직업 세계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내가 언제 현악기 아뜰리에를 방문해 그 장인과 이야기해 볼 일이 있겠나 싶은 생각에 초등학교 갓 입학한 1학년으로 돌아간 마음으로 열심히 이것 저것 물었다.



# 현악기 아뜰리에, Gilles Braem


 Gilles Braem의 아뜰리에에서 만난 장인은 Monsieur Roland, 홀랑 아저씨! Luthier(현악기 장인)와 관련된 단어들을 찾아 미리 준비해간 질문들을 던지고 일터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제작하는 일이 좋아 이 직업을 택한 뒤, 10대 때 3년 6개월 동안의 apprentissage(도제 수업)를 거쳐 Gilles Braem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르도에 몇몇 분점을 가지고 있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악기들은 유럽뿐아니라 한중일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팔린다고 한다. 직업음악인들을 위한 악기는 무려 7-8000유로, 천만원을 호가한다고! 이 곳에서는 음악가들의 현악기 유지보수 업무도 하고 있다. 이 직업의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는, 공짜 연주회 티켓 얻는 것과 내가 만든 악기를 사용하는 연주자를 지켜 보는 것이라며 웃는 홀랑 아저씨 ㅎㅎ. 좋은 현악기를 만드는 일에 대해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담백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느껴졌다.

 

-무슈 홀랑 왈, 모든 현악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같은 것이 없으며 저마다 미묘한 특징을 갖는다.

-정말? 다 똑같이 생겼는데..



#무엇을 배웠나

 3-40분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조별 레포트 작성시간. 교재인 Alter ego B1의 3단원에는 직업과 관련된 다양한 어휘와 텍스트가 제시되고, 문법파트에서는 간접화법의 시제변화를 다루고 있다. 파트를 분담해 녹음해온 홀랑 아저씨의 이야기를 간접화법으로 바꾸어 요약하고 보고서로 작성했다. 보르도 경영대에서 공부한 Jingyu가 주도적으로 할 일을 나눠줘서 보고서 작성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직접 작성한 인터뷰 보고서.

 한국에서는 이런 체험형 수업 방식이 초등학생 때 한 두 차례 있거나 그나마도 효율을 위해 축소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오십이 되어 다시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정말 유익한 수업방식이다. 책상앞에 앉아 코박고 공부할때와는 달리 다른 세상을 보게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한 번더 생각해 보도록 한다. 간접화법과 직업관련 단어 습득은 덤.

 낯선사람과 마주쳐도 항상 인사하고 또 노상 잘지냈냐는 인사를 하는 이곳, 찾기만 한다면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예술분야의 다양한 문화행사가 끊이지 않으며, 대중교통마저 운행않는 휴일이 존재하는 이곳. 초고속 인터넷이나 초고속 배달 문화도 없고 뭔가 하려할 때마다 가져오라는 서류들 때문에 골치아프기 일쑤지만, 오랜 시간 '가치'에 대한 이들의 고민과 그것들이 녹아난 생활을 직접 경험하게 될때마다 기분이 참 묘해진다.

 몇몇 지인들은 프랑스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면 파리나 리옹 등 아는 대도시 몇군데를 대며 왜 그곳이 아닌지 조금 의아해 하는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파리에 가지 못한 것에 조금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보르도를 고른 것에 후회는 없다. 프랑스는 지방분권화가 무척 잘이루어져 문화생활, 교통, 쇼핑, 교육 등 생활면에서 대도시에 비해 조금도 부족한 점 없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팡팡터지는 초고속 인터넷이랑 팔팔 끓인 된장찌개, 매운 떡볶이가 벌써 그리운 요즘이지만 프랑스 특히 보르도에는 이 모든 그리움을 상쇄할만한 매력이 있다.


 



 보르도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수업이 있는 모든 날 방과후에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해두고 있다. 작게는 자막이 있는 프랑스영화 상영부터, 프랑스 요리 아뜰리에나 Grand Théâtre(오페라하우스) 방문 등 다양한 활동들이 한 달 단위로 계획되어 있다. 보르도에 도착해 처음 사귄 중국인 친구, Jingyu(징위)의 제안으로 샤또투어를 신청하게 됐다. 일반 투어은 테마 별로 6유로 부터 2~30유로 까지 다양한데, 알리앙스가 제공한 투어는 5유로에 샤또와 와인저장고인 셰 등을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는 간단한 투어로 시간적/금전적 부담이 없어 망설이지 않고 신청할 수 있었다.


보르도는 남서부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전라남도쯤 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발품 팔아본 결과 행정구역상 보르도는 그리 큰 편은 아니다. 그치만 아끼뗀 주의 주도로 인근지역의 생활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사람들은 보르도 중심지(Centre-Bordeaux)를 둘러싼 인근 포도주 생산지를 통틀어 보르도라고 부른다. 


- 파란 표시가 보르도 중심가. 중심가를 기점으로 3개의 트램 노선이 펼쳐져있다. 버스는 배차간격이 커서 트람이 고장났을 때가 아니면 이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성씨에 저마다 본가, 가문이 있는 것과 비슷하게도 프랑스의 포도주에도 가문이 있다. 바로 샤또라고 불리는 포도주 생산지다. 다양한 포도주의 가문인 '샤또 Château'는 불어로 중세의 성이나 저택을 의미하는 데, 실제로 보르도에 위치한 유서깊은 샤또들은 몇백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해왔다고 한다. 내가 첫번째로 방문하게된 샤또는 위 지도에서 자주색 부분 Haut-Medoc(직역하면 높은 메독)에 위치한 샤또 뒤 따이앙! 메독 지역이 완만한 경사지대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지대가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이만 설명은 줄이고 비루한사진 감상 시간 ㅎㅎ 포도주 무지랭이지만 아는 바를 영혼까지 끌어 모아 적어본다.

-쾌청한 보르도 날씨! 따로 포도밭은 안보여줘서, 아쉬운대로 줄지어 선 아기 포도나무들 구경.


- 가이드 투어 시작. 열심히 듣는 알리앙스 학생들

- 가이드 언니 : 어서와. 이런덴 처음이지? 너네 지금 딱 서있는 여기가 바로 16세기에 지어진 와인셰(셀러,저장고)야.


- 와인 저장통만 최근 거고, 이 건물은 16세기 그대로야. 좀 서늘해. 벽이 더럽지? 습기 차서 버섯까지 폈어.

- 우리가 청소하기 싫어서 그런거 절대아니고. 이 버섯핀 오래된 벽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서 리모델링 불가야. 와인

에는 버섯 안피니까 걱정마^^*


- 포도를 착즙 및 가공하는 설비들이야.

- 알리앙스 학생일까? 불어 설명이지만 열심히 듣는 에스파뇰 아주머니!


- 긴 설명 듣느라 수고 했어. 자, 그럼 한잔시작할까? 처음으로 마시게 될 와인은 La Dame blanche 라 담 블랑슈(블량슈 아줌마), 화이트와인이지. 다 마셨으면 레드와인도 맛 보도록 해.

[코멘트] 와인 무지랭이라 처음으로 마신 화이트 와인은 라담 블량슈가 되었다. 레드와인 보다는 포도주 특유의 떫고 강한 맛이 좀 더 옅고, 대신 꽃? 과일? 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스테이크 보다 가벼운 다른 식사를 할때 곁들이면 좋을 것 같다. 

- 첫번째는 demi-bouteille(드미 부테이유, 반병), 두번째는 bouteille(부테이유, 한 병), 세번째는 magnum(마그넝, 큰술병), 네번째는 double-magnum(두블 마그넝, 큰큰 술병) 그리고 네번째는 géroboam(제호보앙, 큰큰큰 술병) 이라 불려. 우리가 평소에 마시는 건 두번째, 부테이유야.

[코멘트] 프랑스어 듣기 실력을 늘리려고 DVD를 빌려다 보는데, 영화에샤또 투어때 본 두블 마그넝 크기의 와인병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Coco avant Chanel(샤넬이 되기 전의 코코)이라는 영화였는데, 파티 장면에서 주최자가 와인을 나누어 줄때 큰 와인병, 아마도 두블 마그넝?이 등장한다


- 징위가 찍어준 기념사진ㅎㅎ

와인 저장고를 둘러보고 포도주 시음 까지 마치면 포도주 쇼핑 시간이 찾아온다. 집에 사다둔 포도주 한 병이 있어서 망설이다가 구입하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에 저마다 손에 한 병씩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조금 후회가 됐다. 방문한 샤또의 포도주 맛이 나쁘지 않다면 사다두고 마시며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렸을 때 방문했던 제주도 감귤 농장이 생각 났다. 농장 둘러보고 귤, 한라봉, 동충하초(??) 분위기에 휩쓸린 강매 ㅎㅎㅎ.


마지막으로, 무지랭이가 알려주는 보르도와인을 고르는 작은 팁! '보르도 와인은 빈티지를 많이 탄다'고 한다. Vintage 빈티지는 패션계에서 의도된 비루한 차림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고, 해마다 수확된 포도의 작황에 따른 품질을 의미함.ㅎㅎ '빈티지가 좋다'고 하면 수확된 포도주의 품질이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가 된다. 아래 사진은 산지에서 직송하는 보르도 레드와인 빈티지 분류표 영문본!. 최근 와인 중에서는 2008~2010년 와인이 좋은 빈티지다. 이 외에 가볍게 좋은 포도주를 고르고 싶다면, 보르도 시내 곳곳에 위치한 거대한 와인전문 판매점을 찾아가 가격대를 정하고 추천받을 수 있다. :D


 그 밖에, 샤또 투어 정보는 보르도 관광안내소가 대부분 주관 하고 있다. 단체로 가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예약하고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 다음번 샤또 투어 때는 같은 방식으로 생산되지만 서로 다른 빈티지를 맛보는 버티컬 테스트, 같은 빈티지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는 와인을 비교해보는 허리즌털 테스트를 경험해보고 싶다.





 


# 생활터전이 된 보르도 감상


 보르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트램B선의 감베따역에 내릴때마다 목적지는 잠시 잊고 곧장 큰 나무와 대성당의 존재감에 압도된다. 유럽 여행할때도 매번 느꼈던 거지만 이런 오래된 건축물들 사이에서 일상을 사는 유럽 사람들이 부럽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뿐. 유학 온 나에게 보르도는 관광지가 아니라 앞으로 8개월간 머물게 될 생활 터전이다. 다시 처리해야 할 일을 찾아 발길을 재촉한다. 거래 은행, 휴대폰 통신사, 학교를 비롯한 각종 편의 시설들이 이 역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체류증, 은행계좌 등 각종서류를 준비하다 문제가 생겼다. 말도 잘 안통하고 아무도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 이곳.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인 거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고싶어졌다. 1년 전 여행 당시에는 낭만적으로만 다가왔던 유럽의 거리들이 음울한 마음을 따라,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채 정체된 것처럼 느껴졌다



# 변덕스러운 날씨


 맑은 날의 보르도는 낡은 건물들의 색감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낮은 건물 탓에 하늘을 손으로 잡아 당겨 구름을 끌어 올 수 있을 것만 같다. 반대로 추적추적 비가오는 날은 굉장히 우중충하다. 잔뜩 깔린 구름이 볕을 막아 낮인데도 어둑어둑하다. 하늘 역시 색이 없다. 베이지색 건물도 습한 날씨가 다 빨아 들여 빛이 바랜 색으로 바뀌어 버린다


 보르도 날씨는 오락가락이 심하다. 맑아졌나 싶다가도 갑자기 흐려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인다. 비맞는 것이 싫어 우산을 챙겨다니지만 변덕스러운 날시에 장단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를 몇차례 반복하다 포기하고 빗방울 정도는 그냥 맞고 다니기가 일상이 되었다.




갑갑한지 종종 이런다. 돼지고양이.

첨엔 점프해서 방문 마구 열고 들어오더니, 캐리어로 막아두니 그러기를 멈췄다. 대신 방문 열고 나가기만 하면 뚫어져라 감시당하는 나의 유학생활 휴.


 우리나라의 개고기 문화를 야만적이라고 비판해 물의를 일으켰던 나라답게 프랑스에는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파트 앨리베이터에서 사냥개 같이 생긴 개를 마주치고 너무 놀라서 소리 질렀는데 사랑스러운 우리개 놀라게 왜그러냐는 반응. 휴..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엘리베이터 문앞에 서는 일이 절대 없어졌다. 보르도에 머문지 열흘이 되어가는데,큰 개일수록 훈련이 무척 잘되어 있다. 트램이나 버스에서도 종종 아무렇지 않게 데리고 탄 개들을 볼 수 있으니 이점은 다행이지 싶다.  


 보르도 도착전부터 머물기로한 홈스테이집과 연락이 제대로 안이루어지더니 결국 도착후 문제가 생겼다. 유학원은 수속비 다 받고 비자도 나왔으니 거의 나몰라라에 가까웠고.. 유학원들에 대한 불신을 담은 블로그들을 많이 봐서 애초에 별로 기대도 안했지만. 여튼 도착해서 짧은 불어로 픽업 나와주실분을 구하고 짐을 옮기고, 홈스테이집을 변경해야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시설 좋은 아파트여서 만족스러운가 했더니 웬걸, 고양이가 있다!


 장시간 비행, 홈스테이 문제, 몸무게에 육박하는 무거운 수하물들..

녹초가 되어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고양이가 제멋대로 문을 열고 방을 오가니 신경이 곤두섰다. ㅠㅠ.. 홈스테이집을 다시 옮겨달라고 말해볼까, 별 생각을 다했지만 캐리어로 문 막아 두면 방에는 큰 문제는 없으니 견뎌보기로 했다. 고양이 무섭다며 옮겨달라했어도 아마 우리 예쁜이(mon chéri)한테 왜그러냐는 반응이었을게 틀림없다.

 피할수없다면 즐겨라. 본의아니게 고양이 컬렉션을 모으게 됐다. 고양이와 한집살이 하는데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적당히 거리 두면서.아직은 무섭다.ㅠ

1. 2. 3. 4. 시스티나 예배당

 시스티나 예배당은 교황선출을 위한 선거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투표를 마치면 투표용지를 모아 불에 태우는 데 선출 되었을 경우 하얀 연기를, 그렇지 않을 경우 검은 연기를 굴뚝으로 내보낸다는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곳의 천장화와 제단화는 모두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비록 모두 종교화이지만, 신도가 아닌 사람들도 빨아 들이는 마력이 있다.

 

@천지창조

 천장화의 가운데 9개 그림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그 곁가지 그림은 예언자들의 모습과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밑에서 부터 각각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추방, 노아의 희생, 노아의 방주 그리고 노아의 만취를 보여준다. 순서상으로는 노아가 등장하는 세 그림을 먼저 그렸다고 한다. 천장 전체의 크기가 미식축구장의 1.5배라고 하니 그림 하나당 엄청난 크기인 셈이다.

 위에서 부터 세 그림을 먼저 작업하고 자신의 그림을 확인하던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작업이 가져다준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천 장이 너무 높아 세밀한 묘사는 잘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원죄와 낙원추방>을 비롯한 나머지 그림은 더 간결하고 크게 그렸다고 한다. 천재가 저지른 실수라 덮고 넘어가기엔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 미켈란젤로는 3차원으로 구현되는 조각을 최고의 예술이라 생각하여 회화를 등한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는 비례, 균형이 다소 어색한 부분이 발견된다고.

 성경을 잘 모르더라도 세상이 물에 잠긴 가운데 몇몇 무리가 배에 타 있는 두 번째 그림에서 <노아의 방주>를 연상할 수 있다. 네 번째 그림에서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수치심, 후회, 절망을 느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쉽게 알수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림 하나하나 자세히 보려고 천장을 몇 분 올려다 보고 있으려니 금새 목이 뻐근해왔다. 화가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천장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담의 창조>. 특별한 장식 없이 여백 속에 드러난 신과 인간의 교감이라는 뚜렷한 주제의식 때문이었을까? 여러 그림들 중에서도 한가운데 놓인 아담의 창조가 단연 눈에 들어왔다. 신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모습이다. 갈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담에게 손을 뻗어 생명을 전하는 이 장면은 외계인과 인간이 친구가 된다는 설정의 영화 <ET>의 명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은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이 장면의 모티프를 얻었다.


 

@최후의 심판

 세상의 끝에서 신의 심판이 도래하는 날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이다. 그림 하단부에는 죄 많은 이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 몇몇은 예수가 있는 쪽으로 상승하고 있다. 하단 중앙부의 천사들은 심판의 날을 널리 알리려는 듯 나팔을 불고 있다. 금방이라도 어수선한 소리들이 들려올 것만 같다. 그림 정면 가운데에는 예수가 있고 그 주위로는 열쇠를 든 베드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으로 순교했던 바르톨로메오 등 그의 제자들이 있다.

 이 그림이 단순히 최후의 날을 묘사하고 상상한 그림에 그쳤다면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의 자세한 세부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보면 <최후의 심판>은 그자체로 하나의 얼굴과 같은 모습이 된다.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난 뒤라 전율이 덜했지만 미켈란젤로의 재기발랄함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굴이라니. 세상이 끝나는 날 신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와 마주해 그 죄를 묻는다. ‘너의 죄는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이냐, 모두 지켜보고 있다.’ 그림이 내게 말이라도 거는 기분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낡은 간판이 떠올랐다. 개츠비라는 한 신사가 날마다 열던 화려한 파티와 그의 순애보가 모두 허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소설의 서두와 말미에는 도로변에 세워진 에클버그 박사의 거대한 간판이 등장하는 데, 마치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을 누군가 심판의 눈으로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의 일부를 발췌해 적어본다.

 

윌슨 뒤에 서 있던 미카엘리스는 그가 마침 그때 사라져 가고 있던 밤의 장막 아래에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에클버그 박사의 눈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신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신거야.” 하고 윌슨은 되풀이했다.

저건 단지 광고예요.” 미카엘리스가 윌슨에게 말했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민중출판사 304p



 

 

1. 2. 3. 4. 성 베드로 대성당



 베드로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하늘로 가는 열쇠를 부여받아 가톨릭교에서 초대 교황으로 여겨진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바로 이 베드로의 순교지에 세워졌다. 그래서 성당의 모양도 베드로를 상징하는 열쇠구멍 모양이라는 점! ㅎㅎ

 지금의 거대한 베드로 대 성당은 16세기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탁으로 당시 이탈리아의 건축가 브라만테에 의해 개축된 것이라고 한다. 개축비용을 대기 위해 교황청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며 면죄부를 판매했고, 신학자였던 루터가 이에 95개조 반박문을 내놓자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구교와 신교가 갈라지게 된다. 과학의 발전과 15세기 말 신대륙 발견으로 잉태된 인간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종교개혁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인간에 관심을 두는 문예부흥의 시대,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을 짓는 등 을 찬미하는 열정이 정점을 찍은 중세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인간자신을 탐구하는 르네상스 시대로 가는 씨앗이 싹튼 걸 보면 세상살이란 참 아이러니 한 것으로 느껴진다.


 베드로 성당 내부에는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의 모작도 종종 보인다. 그런데 성당 내부의 거대한 벽화들은 모두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개축 당시 영구성을 위해 모든 그림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동원되고 한 켠에서는 대공사를 서두르기 위해 누군가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당시 사회 지도층이었던 기독교 집단의 자의식이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켈란젤로의 대표 조각상으로 널리 알려진 <피에타>도 성당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보통 조각가들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돌에 조각하여 보이지 않게 연결하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언제나 하나의 돌을 이용해 조각품을 완성했다. <피에타>도 역시 그렇게 작업된 작품으로, 늘어진 예수의 몸과 처연한 마리아의 표정에서 젊은 시절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예전에 미치광이의 난입으로 조각상이 파손된 적이 있어 현재는 조각품 앞에 방탄유리가 설치되어 있다. 예술품의 생명은 아우라인데 빛이 반사되는 유리를 통해 볼 수 밖에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해질녘이 되어서야 베드로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창 한가운데로 비쳐 들어오는 빛과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만나 거대한 성당이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평소 장난기 많은 나도 그만 압도되어 엄숙해진 채 성당 문을 나섰다. 주말이면 많은 인파가 몰려 미사를 드린다는 열쇠구멍 모양의 광장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금의 바티칸 시국은 중세시대와 르네상스가 공존하던 무렵에 완성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종교국가를 표방하고 각종 종교화를 수집·전시하지만, 곳곳에서 과학연구에서 크게 진일보한 당시 인간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비록 하루동안 머물렀지만 밀도가 매우 높았던지라 이야기가 길어져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리기로 한다.



1. 2. 3. 4. 바티칸 시국


 바티칸 시국은 로마 시내에 자리 잡은 교황령으로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요즘 시대에 정치와 종교가 일체된 전제군주국가가 버젓이 남아있다니! 유교가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오랜 세월 지배해왔다면, 서구 사회에서는 카톨릭이 유럽인들의 의식구조를 구성해왔을 거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 이 작은 국가를 하루 동안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이라는 성 베드로 성당과 종교화를 비롯한 카톨릭 관련 예술품을 모아둔 바티칸 박물관, 교황 선출 장소인 시스티나 예배당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으로 보이는 산림에는 수도원이 있고, 와인생산 등 수익사업을 하기도 한다고. 사진 출처는 구글맵 편집.



 

1. 2. 3. 4. 바티칸 박물관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수많은 종교화가 모여 있는데 무교인 나에게 엄청난 수의 종교화 관람은 사실 고문에 가까웠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표작이나 눈이 가는 작품 위주로 마음에 담아오기로 했다.

그림, 종교 문외한이 종교화를 그래도 좀 재미있게 보기 위해선 성경 속 인물들의 상징을 아는 것이 좋다. 성경의 주요사건이나 순교방식에 따라 각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있다. 문맹자가 많았던 옛날, 성경을 전파하기 위한 방식으로 그림이 사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기억나는 것만 몇몇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예수로부터 하늘로 가는 열쇠를 부여받은 베드로의 상징은 열쇠, 거꾸로 된 십자가이다. 사도 요한의 상징은 책, 칼이다. 프란체스코는 걸음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허리에 묶은 끈이 아이콘이 되었다. 제롬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해 책과 필기구를 든 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 잡생각이 들 때마다 돌로 가슴을 쳤다고 전해져 돌을 들고 있는 모습, 가시 박힌 사자를 구해줬더니 항상 곁을 지켰다고 전해지는 사자가 항상 제롬과 함께 등장한다.

그럼 이제 바티칸 박물관의 대표작 몇몇을 살펴보자.


@라파엘로의 3연작 중 <그리스도의 변모>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모>

조반니 벨리니 <그리스도의 변모>


 예수가 제자 몇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랐을 당시 구약시대의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며 예수가 성스러운 모습으로 변한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라파엘로의 탁월함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화가의 그림과 비교해 볼 때 빛을 발한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과 비교해보자.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보다 역동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거대한 화폭을 올려다보면 화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금방이라도 빠져들 듯 하다. 등장인물의 시선과 손짓이 이루는 삼각형 구도는 이런 역동성 가운데서 안정감을 준다. 명암처리는 꼭 사진편집에서의 로모효과 같다.

 

@까라바조 <입관>


 피렌체 우삐치 미술관의 메두사 이야기에 등장했던 바로 그 까라바조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다 감옥에 가면 그를 아끼는 귀족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풀려나기가 일상이던 난봉꾼이었다고 한다. 이후 우발적 살인으로 도망생활을 하다 죽은 천재화가. 하느님이 그에게 천재적 재능을 부여해주는 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사회적응 능력치 채워주기를 깜빡하셨던 모양이다. 난봉꾼 기질 탓에 부정적 평가를 받는 화가임에도 바티칸 박물관에 그의 그림이 떡하니 걸려있는 것을 보면 그의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음을 추측케 한다.

 까라바조는 극 사실주의를 표방한 화가였다. 죽은 예수의 잿빛 얼굴, 더러운 발톱, 비탄에 빠진 인물의 표정이 마치 철저히 고증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까라바조는 극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항상 그림의 배경을 검게 칠하고 조명효과를 준 듯 빛이 한 방향에서만 오는 듯 보이도록 명암을 표현 했다고 한다.

 

@다빈치 <성 히에로니무스>


 누더기를 걸치고 앙상한 뼈를 드러낸 주인공은 손에 돌을 쥐고 있고, 옆에는 사자 한 마리가 개라도 되는 양 온순하게 앉아있다. 그렇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을 최초로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을 가리킨다. 화폭에서 제롬을 둘러싸는 직사각형을 그리면 황금비율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제롬의 앙상한 몸에서 우리는 당시에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을 화가의 해부학 지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시대를 살았던 천재 3인방 가운데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예술적 감수성이나 격정이 읽히는 것에 반해, 다빈치의 작품에서는 비례와 조화에의 강박, 이성과 절제 같은 것들이 먼저 느껴진다. 자연관찰을 즐기고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거나 구상했던 것을 보면, 다방면에서 종합적 천재였던 그에게 그림은 실험이나 구상을 위한 방편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 다빈치의 작품에 미완성작이 많았던 이유에 조금은 수긍이 간다.

 


@라파엘로 - 서명의 방 중 <아테네 학당>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라파엘로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던 서명의 방 4면에는 각각 4대 학문인 철학, 미학, 신학, 법학을 상징하는 그림이 있다. 철학을 상징하는 <아테네 학당>은 서명의 방 그림들 중 가장 유명하다. 이상주의자였던 플라톤은 하늘을, 현실주의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 문명의 여러 신학자, 철학자, 수학자들도 그림에 등장한다. 등장인물이 많아 번잡한 느낌을 주기 쉽지만 라파엘로가 빈번히 사용한 삼각구도로 정리된 느낌을 준다. 돔 형 건물의 소실점이 모이는 지점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세워 이상이냐, 현실이냐하는 철학의 근본 논쟁을 일깨워주고 있다. 빈 벽을 두고 이런 설정과 구도를 생각해낸 것에 감탄해 잠시 넋을 놓고 서성서성 했다,

그 외에 미학을 상징하는 <파르나수스의 신과 뮤즈>, 신학을 상징하는 <성체논의>, 법학을 상징하는 <기본적인, 신학적인 덕목 그리고 법>이 나머지 벽을 장식하고 있다. 고전과 인문주의를 강조한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되어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들, 그리스 문명의 학자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1. 2. 3. 4. 시스티나 예배당

 3 신성과 인성이 교차하는 바티칸 시국⑵ 에서 이어 연재하기로 한다.





#Canon, EOS100D


#광화문역, 한국프레스센터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프레스 센터 건물이 높게 솟았다.


건물벽에 세개의 점이 꼬물꼬물 움직인다.


자세히 보니 건물외벽청소부가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일을 하고 있다.


번화한 거리를 무심히 지나는 사람들과 동떨어져 벽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낯선 존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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