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4. 시스티나 예배당

 시스티나 예배당은 교황선출을 위한 선거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투표를 마치면 투표용지를 모아 불에 태우는 데 선출 되었을 경우 하얀 연기를, 그렇지 않을 경우 검은 연기를 굴뚝으로 내보낸다는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곳의 천장화와 제단화는 모두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비록 모두 종교화이지만, 신도가 아닌 사람들도 빨아 들이는 마력이 있다.

 

@천지창조

 천장화의 가운데 9개 그림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그 곁가지 그림은 예언자들의 모습과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밑에서 부터 각각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추방, 노아의 희생, 노아의 방주 그리고 노아의 만취를 보여준다. 순서상으로는 노아가 등장하는 세 그림을 먼저 그렸다고 한다. 천장 전체의 크기가 미식축구장의 1.5배라고 하니 그림 하나당 엄청난 크기인 셈이다.

 위에서 부터 세 그림을 먼저 작업하고 자신의 그림을 확인하던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작업이 가져다준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천 장이 너무 높아 세밀한 묘사는 잘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원죄와 낙원추방>을 비롯한 나머지 그림은 더 간결하고 크게 그렸다고 한다. 천재가 저지른 실수라 덮고 넘어가기엔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 미켈란젤로는 3차원으로 구현되는 조각을 최고의 예술이라 생각하여 회화를 등한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는 비례, 균형이 다소 어색한 부분이 발견된다고.

 성경을 잘 모르더라도 세상이 물에 잠긴 가운데 몇몇 무리가 배에 타 있는 두 번째 그림에서 <노아의 방주>를 연상할 수 있다. 네 번째 그림에서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수치심, 후회, 절망을 느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쉽게 알수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림 하나하나 자세히 보려고 천장을 몇 분 올려다 보고 있으려니 금새 목이 뻐근해왔다. 화가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천장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담의 창조>. 특별한 장식 없이 여백 속에 드러난 신과 인간의 교감이라는 뚜렷한 주제의식 때문이었을까? 여러 그림들 중에서도 한가운데 놓인 아담의 창조가 단연 눈에 들어왔다. 신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모습이다. 갈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담에게 손을 뻗어 생명을 전하는 이 장면은 외계인과 인간이 친구가 된다는 설정의 영화 <ET>의 명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은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이 장면의 모티프를 얻었다.


 

@최후의 심판

 세상의 끝에서 신의 심판이 도래하는 날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이다. 그림 하단부에는 죄 많은 이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 몇몇은 예수가 있는 쪽으로 상승하고 있다. 하단 중앙부의 천사들은 심판의 날을 널리 알리려는 듯 나팔을 불고 있다. 금방이라도 어수선한 소리들이 들려올 것만 같다. 그림 정면 가운데에는 예수가 있고 그 주위로는 열쇠를 든 베드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으로 순교했던 바르톨로메오 등 그의 제자들이 있다.

 이 그림이 단순히 최후의 날을 묘사하고 상상한 그림에 그쳤다면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의 자세한 세부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보면 <최후의 심판>은 그자체로 하나의 얼굴과 같은 모습이 된다.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난 뒤라 전율이 덜했지만 미켈란젤로의 재기발랄함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굴이라니. 세상이 끝나는 날 신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와 마주해 그 죄를 묻는다. ‘너의 죄는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이냐, 모두 지켜보고 있다.’ 그림이 내게 말이라도 거는 기분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낡은 간판이 떠올랐다. 개츠비라는 한 신사가 날마다 열던 화려한 파티와 그의 순애보가 모두 허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소설의 서두와 말미에는 도로변에 세워진 에클버그 박사의 거대한 간판이 등장하는 데, 마치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을 누군가 심판의 눈으로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의 일부를 발췌해 적어본다.

 

윌슨 뒤에 서 있던 미카엘리스는 그가 마침 그때 사라져 가고 있던 밤의 장막 아래에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에클버그 박사의 눈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신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신거야.” 하고 윌슨은 되풀이했다.

저건 단지 광고예요.” 미카엘리스가 윌슨에게 말했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민중출판사 304p



 

 

1. 2. 3. 4. 성 베드로 대성당



 베드로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하늘로 가는 열쇠를 부여받아 가톨릭교에서 초대 교황으로 여겨진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바로 이 베드로의 순교지에 세워졌다. 그래서 성당의 모양도 베드로를 상징하는 열쇠구멍 모양이라는 점! ㅎㅎ

 지금의 거대한 베드로 대 성당은 16세기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탁으로 당시 이탈리아의 건축가 브라만테에 의해 개축된 것이라고 한다. 개축비용을 대기 위해 교황청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며 면죄부를 판매했고, 신학자였던 루터가 이에 95개조 반박문을 내놓자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구교와 신교가 갈라지게 된다. 과학의 발전과 15세기 말 신대륙 발견으로 잉태된 인간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종교개혁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인간에 관심을 두는 문예부흥의 시대,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을 짓는 등 을 찬미하는 열정이 정점을 찍은 중세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인간자신을 탐구하는 르네상스 시대로 가는 씨앗이 싹튼 걸 보면 세상살이란 참 아이러니 한 것으로 느껴진다.


 베드로 성당 내부에는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의 모작도 종종 보인다. 그런데 성당 내부의 거대한 벽화들은 모두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개축 당시 영구성을 위해 모든 그림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동원되고 한 켠에서는 대공사를 서두르기 위해 누군가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당시 사회 지도층이었던 기독교 집단의 자의식이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켈란젤로의 대표 조각상으로 널리 알려진 <피에타>도 성당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보통 조각가들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돌에 조각하여 보이지 않게 연결하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언제나 하나의 돌을 이용해 조각품을 완성했다. <피에타>도 역시 그렇게 작업된 작품으로, 늘어진 예수의 몸과 처연한 마리아의 표정에서 젊은 시절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예전에 미치광이의 난입으로 조각상이 파손된 적이 있어 현재는 조각품 앞에 방탄유리가 설치되어 있다. 예술품의 생명은 아우라인데 빛이 반사되는 유리를 통해 볼 수 밖에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해질녘이 되어서야 베드로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창 한가운데로 비쳐 들어오는 빛과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만나 거대한 성당이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평소 장난기 많은 나도 그만 압도되어 엄숙해진 채 성당 문을 나섰다. 주말이면 많은 인파가 몰려 미사를 드린다는 열쇠구멍 모양의 광장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금의 바티칸 시국은 중세시대와 르네상스가 공존하던 무렵에 완성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종교국가를 표방하고 각종 종교화를 수집·전시하지만, 곳곳에서 과학연구에서 크게 진일보한 당시 인간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비록 하루동안 머물렀지만 밀도가 매우 높았던지라 이야기가 길어져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리기로 한다.



1. 2. 3. 4. 바티칸 시국


 바티칸 시국은 로마 시내에 자리 잡은 교황령으로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요즘 시대에 정치와 종교가 일체된 전제군주국가가 버젓이 남아있다니! 유교가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오랜 세월 지배해왔다면, 서구 사회에서는 카톨릭이 유럽인들의 의식구조를 구성해왔을 거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 이 작은 국가를 하루 동안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이라는 성 베드로 성당과 종교화를 비롯한 카톨릭 관련 예술품을 모아둔 바티칸 박물관, 교황 선출 장소인 시스티나 예배당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으로 보이는 산림에는 수도원이 있고, 와인생산 등 수익사업을 하기도 한다고. 사진 출처는 구글맵 편집.



 

1. 2. 3. 4. 바티칸 박물관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수많은 종교화가 모여 있는데 무교인 나에게 엄청난 수의 종교화 관람은 사실 고문에 가까웠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표작이나 눈이 가는 작품 위주로 마음에 담아오기로 했다.

그림, 종교 문외한이 종교화를 그래도 좀 재미있게 보기 위해선 성경 속 인물들의 상징을 아는 것이 좋다. 성경의 주요사건이나 순교방식에 따라 각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있다. 문맹자가 많았던 옛날, 성경을 전파하기 위한 방식으로 그림이 사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기억나는 것만 몇몇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예수로부터 하늘로 가는 열쇠를 부여받은 베드로의 상징은 열쇠, 거꾸로 된 십자가이다. 사도 요한의 상징은 책, 칼이다. 프란체스코는 걸음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허리에 묶은 끈이 아이콘이 되었다. 제롬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해 책과 필기구를 든 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 잡생각이 들 때마다 돌로 가슴을 쳤다고 전해져 돌을 들고 있는 모습, 가시 박힌 사자를 구해줬더니 항상 곁을 지켰다고 전해지는 사자가 항상 제롬과 함께 등장한다.

그럼 이제 바티칸 박물관의 대표작 몇몇을 살펴보자.


@라파엘로의 3연작 중 <그리스도의 변모>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모>

조반니 벨리니 <그리스도의 변모>


 예수가 제자 몇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랐을 당시 구약시대의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며 예수가 성스러운 모습으로 변한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라파엘로의 탁월함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화가의 그림과 비교해 볼 때 빛을 발한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과 비교해보자.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보다 역동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거대한 화폭을 올려다보면 화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금방이라도 빠져들 듯 하다. 등장인물의 시선과 손짓이 이루는 삼각형 구도는 이런 역동성 가운데서 안정감을 준다. 명암처리는 꼭 사진편집에서의 로모효과 같다.

 

@까라바조 <입관>


 피렌체 우삐치 미술관의 메두사 이야기에 등장했던 바로 그 까라바조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다 감옥에 가면 그를 아끼는 귀족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풀려나기가 일상이던 난봉꾼이었다고 한다. 이후 우발적 살인으로 도망생활을 하다 죽은 천재화가. 하느님이 그에게 천재적 재능을 부여해주는 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사회적응 능력치 채워주기를 깜빡하셨던 모양이다. 난봉꾼 기질 탓에 부정적 평가를 받는 화가임에도 바티칸 박물관에 그의 그림이 떡하니 걸려있는 것을 보면 그의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음을 추측케 한다.

 까라바조는 극 사실주의를 표방한 화가였다. 죽은 예수의 잿빛 얼굴, 더러운 발톱, 비탄에 빠진 인물의 표정이 마치 철저히 고증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까라바조는 극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항상 그림의 배경을 검게 칠하고 조명효과를 준 듯 빛이 한 방향에서만 오는 듯 보이도록 명암을 표현 했다고 한다.

 

@다빈치 <성 히에로니무스>


 누더기를 걸치고 앙상한 뼈를 드러낸 주인공은 손에 돌을 쥐고 있고, 옆에는 사자 한 마리가 개라도 되는 양 온순하게 앉아있다. 그렇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을 최초로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을 가리킨다. 화폭에서 제롬을 둘러싸는 직사각형을 그리면 황금비율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제롬의 앙상한 몸에서 우리는 당시에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을 화가의 해부학 지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시대를 살았던 천재 3인방 가운데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예술적 감수성이나 격정이 읽히는 것에 반해, 다빈치의 작품에서는 비례와 조화에의 강박, 이성과 절제 같은 것들이 먼저 느껴진다. 자연관찰을 즐기고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거나 구상했던 것을 보면, 다방면에서 종합적 천재였던 그에게 그림은 실험이나 구상을 위한 방편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 다빈치의 작품에 미완성작이 많았던 이유에 조금은 수긍이 간다.

 


@라파엘로 - 서명의 방 중 <아테네 학당>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라파엘로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던 서명의 방 4면에는 각각 4대 학문인 철학, 미학, 신학, 법학을 상징하는 그림이 있다. 철학을 상징하는 <아테네 학당>은 서명의 방 그림들 중 가장 유명하다. 이상주의자였던 플라톤은 하늘을, 현실주의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 문명의 여러 신학자, 철학자, 수학자들도 그림에 등장한다. 등장인물이 많아 번잡한 느낌을 주기 쉽지만 라파엘로가 빈번히 사용한 삼각구도로 정리된 느낌을 준다. 돔 형 건물의 소실점이 모이는 지점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세워 이상이냐, 현실이냐하는 철학의 근본 논쟁을 일깨워주고 있다. 빈 벽을 두고 이런 설정과 구도를 생각해낸 것에 감탄해 잠시 넋을 놓고 서성서성 했다,

그 외에 미학을 상징하는 <파르나수스의 신과 뮤즈>, 신학을 상징하는 <성체논의>, 법학을 상징하는 <기본적인, 신학적인 덕목 그리고 법>이 나머지 벽을 장식하고 있다. 고전과 인문주의를 강조한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되어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들, 그리스 문명의 학자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1. 2. 3. 4. 시스티나 예배당

 3 신성과 인성이 교차하는 바티칸 시국⑵ 에서 이어 연재하기로 한다.



1. 2. 3. 진격의 아시안

 보통 유럽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하게 되더라도 관광지에서 느긋한 피서를 즐긴다던데, 우리는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은 많고 시간과 돈은 제한적이었다. 우리 여행에는 정말 다시 올 수 없을 지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  하루에 8~10시간을 걸어다녔다. ㅎㅎ

피렌체에서 부터 무리해서 진격의 아시안 찍었더니 여행 초반부터 몸이 성하질 않아서 결국 로마 마지막 날은 쉬엄쉬엄 가기로 했다. 재래시장에서 산 포도 먹으면서 나보나 광장, 뽀뽈로 광장에 주민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우리 그냥 여행객인데 괜히 경찰 한 번씩 지나가면 죄 지은분이었다. 나중에서야 떠오른 생각인데 거리매춘으로 벌어먹고 사는 인구가 꽤 되는 모양이다. 포도는 칠레산이었다. 쩝


1. 2. 3. 맛있는 뽐삐와 한국인 여행객

뽀뽈로 광장 분수에서 놀다가 혼자 온 한국인이 앉아 있길래 칠레산 포도 나눠 먹었다. 그냥 잠깐 대화상대 하려던 거였는데, 이 친구 심심했는지 우리에게 로마 맛집이랑 관광지 뷰포인트를 모두 가이드 해줬다. 이 때 '뽐삐'에서 먹은 티라미슈가 엄청 맛있었는데.. . 결국 세개나 먹었다. 퉁퉁이랑 둘 만 있을 때는 입담 궁합이 거친 편이어서 다른 한국인 있을 때는 되도록 조심했는데 이날 만난 친구들이랑은 재밌어서 다행이었듸.

두 명으로 시작한 로마 시내 배회. 몹쓸 증식력으로 네 명이 되어 돌아왔다. 숙소까지 로마 끝에서 끝을 가로질러 돌아왔는데 입담 과시하느라 엄청 웃어서 힘든지도 몰랐다. 도통 무슨 얘기했는지 기억도 안남ㅎㅎ.. (여행이 좀 지루해질 성 싶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말 건내는 거 적극 추천한다 잼.)

바보넷. 초상권 없다 미안.

저지가 편해서 애용했는데 일용잡부, 소매치기들이 주로 입는 옷인가보다. ATM 옆 횡단보도 기다리다가 쳐다보니 백인여자가 돈 뽑으면서 무서워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시아 남자한테 엄청 불친절하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꼭 그렇다기 보다 이민자 같아 보이지 않도록 옷차림 신경쓰면 좀 나을 성 싶다.


1. 2. 3. Hey, Gypsy of Rom! 보고 있나!?

이탈리아 집시들은 아이폰을 쓴다. 나도 안쓰는 아이폰을.. 이 글을 읽을 수도 있다. 한 손으로 짤통을 흔들어대며 구걸하면서도 남은 한 손으로는 아이폰 하는데 여념없다. 그런 배짱으로 구걸해서 아이폰도 사고 요금도 내고 하나보다.

로마는 무료급식이 상당히 잘 이루어지고 있어 집시들이 굶는 일이 없다고 한다. 2유로 (한화 약 3000원)까지 동전이니 길목만 좋으면 꽤 괜찮은 돈벌이일 법 하다. 불법인건 함정.

한 번은 너무 지쳐서 외진 길을 둘이서만 터덜터덜 걷는데 집시 소녀들이 퉁퉁이의 열린 가방을 보고 따라 붙었다. 처음에는 행인인가보다 했지만 계속 따라와서 훽 돌아 노려보니 귀신 같이 사라졌다. 사실 걔들이 달려들어 머리끄덩이라도 잡았으면 어쩔도리 없는 쪽수라 좀 무서웠는데. 아멘.

<늦게쓰는 구라파 여행기> 쓰는데 지난 기억이랑 자료들을 생각보다 많이 되짚어봐야하는 번거로움에 잠시 손 놓았다. 더위도 한풀 꺾였고 장염 걸려 누워만 있다 심심해서 2편 이어서 쓰기로 했다.


1. 2. 3. 4. Rome Intro 부릉뷰릉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 수도 임에도 고건물 보존이 상당히 잘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묵었던 한인민박의 건물도 100년 이상된 건물이었다. 층간소음에 취약하고 수도시설 등 사소한 불편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오래된 건물 특유의 아우라가 .. .ㅎㅎ

 로마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고대 로마 제국의 발원지이기도 해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도처에 2000년 묵은 유적들이 있다.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유물이 발굴되기 때문에 로마의 지하철은 매우 깊고 A,B 두 개 선 뿐이라고. 돌아와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테베레 강의 범람으로 많은 유적들이 지하에 묻히게 됐다고 한다. 무튼 로마는 그 자체로 거대한 고대 박물관에 가깝다. 그래서 미술관은 아니지만 대표유적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정도 끄적여 보기로 했다.



1. 2. 3. 4. History of 로마제국

 여기서 잠깐 로마제국의 역사를 브리핑해보자. 기원전 8세기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 형제 중 형 로물루스는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팔라티노 언덕의 작은 마을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로마를 건국한다. 어디선가 백일동안 마늘과 쑥만 먹은 곰이 여자가 된다는 단군신화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킁킁.(신화의 의미 찾게 되면 추가해보겠움:)

http://ludappa.tistory.com/453

늑대 젖을 먹고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상징아니고 진짠가? 

 [사진출처] http://ludappa.tistory.com/453 

 로마는 건국초기 약 200년 동안 서아시아계로 추정되는 에트루리아 인의 지배를 받는다. 아치형 건축양식도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기원전 4세기에 이르러서야 독립하고, 귀족뿐 아니라 평민의 발언권을 인정하는 공화정치를 확립한다.

바로 이 공화정 시기에 북아프리아에서 이베리아 반도 남쪽을 지배하던 카르타고와 세 차례에 걸쳐 포에니 전쟁을 치룬다. 로마에 맞서기 위해 코끼리들과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 장군 이야기도 이 전쟁이 배경.

백 년에 이르는 오랜 전쟁 끝에 로마는 카르타고를 제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경제는 피폐해졌고 전쟁에 참여했던 중소농민들이 몰락하게 된다. 여기서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을 외치며 등장하지만 보수적 귀족들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이후 삼두정치 시대를 거쳐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황제로 등극하면서 로마의 공화정은 막을 내리고 제정 시대가 시작된다. 동료들에게 배신당한 카이사르(시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등장하는 2000년 전 막장드라마의 배경이 바로 이 시기다.

이후 로마는 정복 전쟁을 통해 세력을 확장해 북부 아프리카 ~ 서남부 유럽 ~ 남부 러시아에 이르는 대 제국을 이루는 제국시대로 접어 든다. 로마 역사를 간단한 연표로 만들어 보았다.


역사에 대한 토론과 해석은 역사서에 맡기는 걸로.



1. 2. 3. 4.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나

 콜로세움은 로마 제정 초기인 1세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착공해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크다. 와 엄청크다. 

큰건물 처음 본 사람 처럼 그러고 체크포인트 찍고 사진찍고 돌아오고 그르지마.. .라고 공부한거 적어본다. 콜로세움은5만명의 관객과 3천명의 검투사를 수용할 수 있는 초 대규모 공공 오락시설이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야수와 검투사들의 살육장면을 즐겼다. 피 튀고 냄새나는게 뭐가 좋다고 참.. 그치만 검투사에는 전쟁포로, 야수에는 로마 지배하에 놓인 지역 특산 동물들인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 걸 듣고보니, 그들이 죽고 죽이는 장면들을 보며 관객들이 '아 내가 바로 로마 제국의 시민이다! 하악하악' 하며 느꼈을 일체감, 자부심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후 여러 로마 유적들이 으레 당한 것 처럼 귀족의 건축자재 채석장으로 전락하면서 지금은 뼈대만 남았다.

콜로세움 복원도는 아래와 같다.

[출처] http://blog.naver.com/narea0130/60102626228

올림픽경기장의 스타디움과 비슷하지 않나? 많은 관객들이 단시간 내에 출입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오늘날의 스타디움에도 응용되었다. 위에 하얀 천은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용도의 차양막. 

콜로세움이 있던 부근에는 원래 네로 황제 개인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황금성이 있었는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그 자리에 전리품으로 축적한 부로 콜로세움을 지었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복원도에서 각 아치마다 놓여있는 대리석 조각도 원래는 네로 황제 개인 정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바티칸 박물관에서 보게 될 라오콘 군상도 여기서 발굴 된 것이다.

콜로세움의 관람석은 귀족-평민-가난한 자 순이었다고 한다. 맨 꼭대기 좌석은 빈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3유로짜리 입석티켓으로 3시간 가까이 하는 발레공연 볼 때, 그 기분이겠지 싶었다.

시대와 구체적 내용은 달라졌지만, 이 고대 건축물의 건축과 그 사용에서 우리는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의 공통된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장난기 발동해서 검투사 해 보랬더니. 주먹이 참 실하다 퉁퉁이. 시집갈수있을까♪


콜로세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팔라티노 언덕과 고대 로마의 공공시설이 모여있던 포로로마노를 찾아 볼 수 있다. 문외한의 생눈에 폐허 돌무더기에 그칠 수 있으니 ※주의※ 그래도 2000년 지난 거 치고는 많이 남아 있다. 로마 공화정 당시에는 꽤 그럴듯 했을듯!

- 이지유럽 로마부분에 캄피똘리오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포로로마노 전경 사진과 자세한 설명이 첨부 되어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강츄. 이곳에 율리우스 시저가 화장된 터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고맙게도 라틴어로 안내되어 있어서, 퉁퉁이와 나는 모른채 패스^ㅛ^하고 말았다.


끗.




1. 2. 3. 4.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

끝이었으면 좋겠지만 원래 개요에는 4.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 비교하는 이야기도 있다. 근데 쓰다보니 생각보다 밀도가 높아서 예술 이야기는 많이 못했다. 다음 번에 보강하는 걸로.

진짜 끗.

 서유럽은 문화예술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유럽여행'이라는 로망으로 시작해 박물관 앞에서 '도떼기 시장 헤집기'로 끝나기 쉽상인 곳 이다. 그렇지 않으면, '와 너무 예쁘다'는 말과 플래시 터뜨리기를 반복하다 지쳐 문화유적의 홍수에 떠밀려 귀국하게 되거나.

 많이 알고 가면 좋겠지만 머리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다. 여러 매체에서 회자되는 고전에 가까운 예술품 위주로 보면서 눈길가는 것들에 충실하면 된다. 짧은 지식이지만 이래저래 찾아보고 공부한 이야기를 여기 풀어본다. 여담과 도시 이야기도 있지만, 미술관 얘기가 진짜하고 싶은 얘기임ㅎㅎ


1. 2. 3.  두오모와 죠또 종탑으로 몸풀기

 피렌체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남녀 주인공이 만나기로 약속한 두오모의 돔인 쿠폴라로 유명하다. 그래선지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많다. 자, 소설이 주는 낭만적 상상은 두모오의 꼭대기로 이어지는 400여 개의 계단 앞에서 한걸음 한걸음 무너질 예정이니 마음 단단히 먹고 오르시길.

 필자인 주녕과 함께 간 친구 퉁퉁이는 쿠폴라와 두오모 바로 옆의 죠또 종탑을 모두 올랐는 데, 합쳐서 800개가 넘는 계단이다. 얕잡아 보았다가 이후 여행에서 한국 돌아가면 정말 무릎 못쓰게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두오모와 베끼오 궁, 메디치 가의 궁전이었던 우삐치 미술관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 흐르는 아르노 강과 강 건너의 요새까지, 쿠폴라에 올라 전근대의 도시 국가였던 피렌체의 모습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었다.


1. 2. 3. 르네상스를 배태한 피렌체

 피렌체는 과거 부유한 상업도시로 1400년대 초기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이다. 건축가였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중심으로 미술가들이 과거의 미술 개념에서 탈피해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던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피렌체의 쿠폴라와 예배당 건축은 문예부흥에 선구적 역할을 한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이기도 하다. 피렌체의 예술 부흥 배경에는 메디치 가문의 든든한 서포트가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상업을 통해 얻은 재력을 바탕으로 이후 르네상스의 거장이 되는 미술가들을 후원하고 학예를 장려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 2. 3. 우삐치 미술관

 기존에는 회반죽된 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화나 나무 판자 위에 그림을 그리는 템페라화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유화가 발명되면서 원근법과 명암대조법, 피라미드 구도 등 공간감을 살려 보다 실재에 가까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우삐치 미술관은 시기별로 전시실이 구분 되어있어 이런 기법들이 시간의 흐르면서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메디치가의 궁전이었다고 하는 우삐치 미술관. 크다. 엄청 크다. 여행 초반이었으니 우피치의 르네상스 유산들을 이 두눈에 모두 담아 오겠다는 의지 충만이었지만 결국 일지 메모한 기억에 남는 작가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 그림, 보티첼리,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카라바조의 그림, 미술관 복도의 기괴한 천장화 정도?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

 초입에 놓인 그림인데, 성화이다 보니 인물의 중요성에 따라 원근법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지만 피라미드 구도에서 안정감과 부피감을 느낄 수 있다.

머리의 커다란 금화는 후광을 표현했다고 함 ㅎㅎ 아기 예수 손에 종종 새가 쥐어져 있거나 브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새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브이는 성부, 성자, 성령의 3위일체를 나타낸다고.


@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실제로 보면 아우라가 명화로 남을만 하다. 바람의 신 제피로스와 비너스, 과실나무의 요정 포모나가 피라미드 구도를 이루고 있다. 안정감 있는 화면 가운데에서 비너스의 아름다운 인체표현이 부각된다. 보티첼리라는 화가 인생이 한폭에 요약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그림

몇 점 있기는 하지만 평소에 접해본 대표작은 없었던 듯. 다빈치는 그림 그리다 말기로 유명하니 완성작 기대했다면 뭐, 말 다한셈. 미켈란젤로의 대작들은 로마에서 만나는 걸로.


@카라바쬬의 <메두사>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라는 소설에는 법과 도덕을 뛰어넘는 만행을 저지르는 천재 작곡가가 등장한다. 카라바쬬 역시 만행으로 수차례 감옥을 드나든 천재 예술가였다. 그림을 매우 잘그렸지만 평탄치 못한 성정때문에 사후에도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한다.

 필자는 평소에 기묘한 얼굴 사진, 그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우삐치에서 이 그림을 보고 꽂혔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메두사 그림은 카라바쬬가 사형장에서 목이 베이는 죄수의 표정을 보고나서 바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바티칸 박물관에서도 카라바쬬의 그림을 몇 점 만나 볼 수 있다.


@ 우피치의 천장화

 내부 촬영 금지였나? 그래서 사진은 없다. 우피찌의 천장화에는 피렌체 두오모의 천장화처럼 머리 셋 달린 괴물, 인간 형상을 한 괴물이 많다. 천장화 그림들에는 살육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묘사가 아주 잔혹스럽다. 현대 보다 확실히 인간의 폭력적 본성이 노골적이고 현시적이다. 

 중세시대에는 성안에 귀족의 생활공간과 멀지 않은 곳에 죄수의 고문형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성이 발달하고 계몽주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잔인한 고문이 점점 줄었다고 했는데, 정말 타인의 고통에 대해 우리시대와는 다른 차원의 공감능력을 가졌던게 틀림없다.

 타인이 느끼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동정심, 공감능력은 확실히 성장했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은 아직 그 성장이 요원한 느낌이다.

  정리해고 노동자의 성마른 절규, 비정규직 문제, 원치 않는 전쟁과 아사위기에 놓인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 우리가 이런 것들에 얼마나 무관심한 채 살아가는 가 떠올려보면 현시적이지 않을 뿐 고대나 중세의 폭력애호와 살육은 형태를 달리 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렌체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유물이 발에 채이는 로마에서 만나요α

  작년 봄 이른 아침마다 서대문의 한 홍보회사에서 뉴스클리핑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녔다. 지각이 잦은 농땡이 알바생이었지만 이왕시작한거 6개월은 채우겠다며 새벽 잠  못자가며 버텼던 기억이 난다.

회사에서 조금 걸으면 서울시립미술관이 있었는데 평일오전에 아무도 없는 큰 미술관을 혼자 서성이곤했다. 그때는 생업에 바쁜 보통의 사람들 틈에서 혼자 여유롭게 덕수궁 돌담길이나 시청광장 산책하는게 낙이었다. 그렇게 미술관이랑 친해지면서 그림 보는 일에 관심이 생기고 여기저기 전시회를 찾아다니는게 취미가 되었다.

 지난 겨울에 다녀온 유럽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방문할 지역의 미술관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갔다. 매일매일 일지 남기고, 한국에 돌아오면 책을 더 찾아 읽기로 다짐해놓고 어영부영 하세월만 보내다보니 여름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

 좋아하는 것들을 어떻게 오래오래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동글이의 포스팅에 영향을 받아 나도 지난 유럽 여행 때 들렀던 미술관이랑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옮기기로 한다. 목차는 아래와 같고 순서는 내맘대로일 예정ㅎㅎ 



- 아래 -

목차 (소제목 미정)

피렌체 - 우피치 미술관

로마 1 - 콜로세움

로마 부록 - 로마에서 만난 한국인과 집시  이야기

로마 2 - 바티칸 박물관

로마 3 - 성베드로 성당

나폴리 - 고고학박물관과 피자

파리 1 - 몽마르뜨 언덕

파리 2 - 루브르 박물관

파리3 - 베르사유 궁전

파리 4 - 퐁피두 센터

파리5 - 오르세 미술관

루체른 - 리기산과 빈사의 사자상

뮌헨 1 - 호프브로이와 뢰벤브로이

뮌헨 2 - 독일박물관

뮌헨 3 - 퓌센, 노이슈반스타인 성

뮌헨 4 - 야간버스

빈 1 - 벨베데레 궁전

빈 2 - 오페라하우스

빈 3 - 쇤부른 궁전

빈4  - 제체시온

빈 5 - 야간열차

베니스 - 가면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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