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은 문화예술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유럽여행'이라는 로망으로 시작해 박물관 앞에서 '도떼기 시장 헤집기'로 끝나기 쉽상인 곳 이다. 그렇지 않으면, '와 너무 예쁘다'는 말과 플래시 터뜨리기를 반복하다 지쳐 문화유적의 홍수에 떠밀려 귀국하게 되거나.

 많이 알고 가면 좋겠지만 머리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다. 여러 매체에서 회자되는 고전에 가까운 예술품 위주로 보면서 눈길가는 것들에 충실하면 된다. 짧은 지식이지만 이래저래 찾아보고 공부한 이야기를 여기 풀어본다. 여담과 도시 이야기도 있지만, 미술관 얘기가 진짜하고 싶은 얘기임ㅎㅎ


1. 2. 3.  두오모와 죠또 종탑으로 몸풀기

 피렌체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남녀 주인공이 만나기로 약속한 두오모의 돔인 쿠폴라로 유명하다. 그래선지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많다. 자, 소설이 주는 낭만적 상상은 두모오의 꼭대기로 이어지는 400여 개의 계단 앞에서 한걸음 한걸음 무너질 예정이니 마음 단단히 먹고 오르시길.

 필자인 주녕과 함께 간 친구 퉁퉁이는 쿠폴라와 두오모 바로 옆의 죠또 종탑을 모두 올랐는 데, 합쳐서 800개가 넘는 계단이다. 얕잡아 보았다가 이후 여행에서 한국 돌아가면 정말 무릎 못쓰게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두오모와 베끼오 궁, 메디치 가의 궁전이었던 우삐치 미술관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 흐르는 아르노 강과 강 건너의 요새까지, 쿠폴라에 올라 전근대의 도시 국가였던 피렌체의 모습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었다.


1. 2. 3. 르네상스를 배태한 피렌체

 피렌체는 과거 부유한 상업도시로 1400년대 초기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이다. 건축가였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중심으로 미술가들이 과거의 미술 개념에서 탈피해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던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피렌체의 쿠폴라와 예배당 건축은 문예부흥에 선구적 역할을 한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이기도 하다. 피렌체의 예술 부흥 배경에는 메디치 가문의 든든한 서포트가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상업을 통해 얻은 재력을 바탕으로 이후 르네상스의 거장이 되는 미술가들을 후원하고 학예를 장려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 2. 3. 우삐치 미술관

 기존에는 회반죽된 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화나 나무 판자 위에 그림을 그리는 템페라화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유화가 발명되면서 원근법과 명암대조법, 피라미드 구도 등 공간감을 살려 보다 실재에 가까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우삐치 미술관은 시기별로 전시실이 구분 되어있어 이런 기법들이 시간의 흐르면서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메디치가의 궁전이었다고 하는 우삐치 미술관. 크다. 엄청 크다. 여행 초반이었으니 우피치의 르네상스 유산들을 이 두눈에 모두 담아 오겠다는 의지 충만이었지만 결국 일지 메모한 기억에 남는 작가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 그림, 보티첼리,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카라바조의 그림, 미술관 복도의 기괴한 천장화 정도?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

 초입에 놓인 그림인데, 성화이다 보니 인물의 중요성에 따라 원근법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지만 피라미드 구도에서 안정감과 부피감을 느낄 수 있다.

머리의 커다란 금화는 후광을 표현했다고 함 ㅎㅎ 아기 예수 손에 종종 새가 쥐어져 있거나 브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새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브이는 성부, 성자, 성령의 3위일체를 나타낸다고.


@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실제로 보면 아우라가 명화로 남을만 하다. 바람의 신 제피로스와 비너스, 과실나무의 요정 포모나가 피라미드 구도를 이루고 있다. 안정감 있는 화면 가운데에서 비너스의 아름다운 인체표현이 부각된다. 보티첼리라는 화가 인생이 한폭에 요약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그림

몇 점 있기는 하지만 평소에 접해본 대표작은 없었던 듯. 다빈치는 그림 그리다 말기로 유명하니 완성작 기대했다면 뭐, 말 다한셈. 미켈란젤로의 대작들은 로마에서 만나는 걸로.


@카라바쬬의 <메두사>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라는 소설에는 법과 도덕을 뛰어넘는 만행을 저지르는 천재 작곡가가 등장한다. 카라바쬬 역시 만행으로 수차례 감옥을 드나든 천재 예술가였다. 그림을 매우 잘그렸지만 평탄치 못한 성정때문에 사후에도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한다.

 필자는 평소에 기묘한 얼굴 사진, 그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우삐치에서 이 그림을 보고 꽂혔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메두사 그림은 카라바쬬가 사형장에서 목이 베이는 죄수의 표정을 보고나서 바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바티칸 박물관에서도 카라바쬬의 그림을 몇 점 만나 볼 수 있다.


@ 우피치의 천장화

 내부 촬영 금지였나? 그래서 사진은 없다. 우피찌의 천장화에는 피렌체 두오모의 천장화처럼 머리 셋 달린 괴물, 인간 형상을 한 괴물이 많다. 천장화 그림들에는 살육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묘사가 아주 잔혹스럽다. 현대 보다 확실히 인간의 폭력적 본성이 노골적이고 현시적이다. 

 중세시대에는 성안에 귀족의 생활공간과 멀지 않은 곳에 죄수의 고문형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성이 발달하고 계몽주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잔인한 고문이 점점 줄었다고 했는데, 정말 타인의 고통에 대해 우리시대와는 다른 차원의 공감능력을 가졌던게 틀림없다.

 타인이 느끼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동정심, 공감능력은 확실히 성장했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은 아직 그 성장이 요원한 느낌이다.

  정리해고 노동자의 성마른 절규, 비정규직 문제, 원치 않는 전쟁과 아사위기에 놓인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 우리가 이런 것들에 얼마나 무관심한 채 살아가는 가 떠올려보면 현시적이지 않을 뿐 고대나 중세의 폭력애호와 살육은 형태를 달리 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렌체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유물이 발에 채이는 로마에서 만나요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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