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4. 시스티나 예배당

 시스티나 예배당은 교황선출을 위한 선거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투표를 마치면 투표용지를 모아 불에 태우는 데 선출 되었을 경우 하얀 연기를, 그렇지 않을 경우 검은 연기를 굴뚝으로 내보낸다는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곳의 천장화와 제단화는 모두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비록 모두 종교화이지만, 신도가 아닌 사람들도 빨아 들이는 마력이 있다.

 

@천지창조

 천장화의 가운데 9개 그림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그 곁가지 그림은 예언자들의 모습과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밑에서 부터 각각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추방, 노아의 희생, 노아의 방주 그리고 노아의 만취를 보여준다. 순서상으로는 노아가 등장하는 세 그림을 먼저 그렸다고 한다. 천장 전체의 크기가 미식축구장의 1.5배라고 하니 그림 하나당 엄청난 크기인 셈이다.

 위에서 부터 세 그림을 먼저 작업하고 자신의 그림을 확인하던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작업이 가져다준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천 장이 너무 높아 세밀한 묘사는 잘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원죄와 낙원추방>을 비롯한 나머지 그림은 더 간결하고 크게 그렸다고 한다. 천재가 저지른 실수라 덮고 넘어가기엔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 미켈란젤로는 3차원으로 구현되는 조각을 최고의 예술이라 생각하여 회화를 등한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는 비례, 균형이 다소 어색한 부분이 발견된다고.

 성경을 잘 모르더라도 세상이 물에 잠긴 가운데 몇몇 무리가 배에 타 있는 두 번째 그림에서 <노아의 방주>를 연상할 수 있다. 네 번째 그림에서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수치심, 후회, 절망을 느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쉽게 알수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림 하나하나 자세히 보려고 천장을 몇 분 올려다 보고 있으려니 금새 목이 뻐근해왔다. 화가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천장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담의 창조>. 특별한 장식 없이 여백 속에 드러난 신과 인간의 교감이라는 뚜렷한 주제의식 때문이었을까? 여러 그림들 중에서도 한가운데 놓인 아담의 창조가 단연 눈에 들어왔다. 신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모습이다. 갈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담에게 손을 뻗어 생명을 전하는 이 장면은 외계인과 인간이 친구가 된다는 설정의 영화 <ET>의 명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은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이 장면의 모티프를 얻었다.


 

@최후의 심판

 세상의 끝에서 신의 심판이 도래하는 날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이다. 그림 하단부에는 죄 많은 이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 몇몇은 예수가 있는 쪽으로 상승하고 있다. 하단 중앙부의 천사들은 심판의 날을 널리 알리려는 듯 나팔을 불고 있다. 금방이라도 어수선한 소리들이 들려올 것만 같다. 그림 정면 가운데에는 예수가 있고 그 주위로는 열쇠를 든 베드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으로 순교했던 바르톨로메오 등 그의 제자들이 있다.

 이 그림이 단순히 최후의 날을 묘사하고 상상한 그림에 그쳤다면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의 자세한 세부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보면 <최후의 심판>은 그자체로 하나의 얼굴과 같은 모습이 된다.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난 뒤라 전율이 덜했지만 미켈란젤로의 재기발랄함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굴이라니. 세상이 끝나는 날 신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와 마주해 그 죄를 묻는다. ‘너의 죄는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이냐, 모두 지켜보고 있다.’ 그림이 내게 말이라도 거는 기분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낡은 간판이 떠올랐다. 개츠비라는 한 신사가 날마다 열던 화려한 파티와 그의 순애보가 모두 허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소설의 서두와 말미에는 도로변에 세워진 에클버그 박사의 거대한 간판이 등장하는 데, 마치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을 누군가 심판의 눈으로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의 일부를 발췌해 적어본다.

 

윌슨 뒤에 서 있던 미카엘리스는 그가 마침 그때 사라져 가고 있던 밤의 장막 아래에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에클버그 박사의 눈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신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신거야.” 하고 윌슨은 되풀이했다.

저건 단지 광고예요.” 미카엘리스가 윌슨에게 말했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민중출판사 304p



 

 

1. 2. 3. 4. 성 베드로 대성당



 베드로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하늘로 가는 열쇠를 부여받아 가톨릭교에서 초대 교황으로 여겨진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바로 이 베드로의 순교지에 세워졌다. 그래서 성당의 모양도 베드로를 상징하는 열쇠구멍 모양이라는 점! ㅎㅎ

 지금의 거대한 베드로 대 성당은 16세기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탁으로 당시 이탈리아의 건축가 브라만테에 의해 개축된 것이라고 한다. 개축비용을 대기 위해 교황청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며 면죄부를 판매했고, 신학자였던 루터가 이에 95개조 반박문을 내놓자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구교와 신교가 갈라지게 된다. 과학의 발전과 15세기 말 신대륙 발견으로 잉태된 인간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종교개혁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인간에 관심을 두는 문예부흥의 시대,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을 짓는 등 을 찬미하는 열정이 정점을 찍은 중세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인간자신을 탐구하는 르네상스 시대로 가는 씨앗이 싹튼 걸 보면 세상살이란 참 아이러니 한 것으로 느껴진다.


 베드로 성당 내부에는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의 모작도 종종 보인다. 그런데 성당 내부의 거대한 벽화들은 모두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개축 당시 영구성을 위해 모든 그림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동원되고 한 켠에서는 대공사를 서두르기 위해 누군가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당시 사회 지도층이었던 기독교 집단의 자의식이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켈란젤로의 대표 조각상으로 널리 알려진 <피에타>도 성당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보통 조각가들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돌에 조각하여 보이지 않게 연결하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언제나 하나의 돌을 이용해 조각품을 완성했다. <피에타>도 역시 그렇게 작업된 작품으로, 늘어진 예수의 몸과 처연한 마리아의 표정에서 젊은 시절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예전에 미치광이의 난입으로 조각상이 파손된 적이 있어 현재는 조각품 앞에 방탄유리가 설치되어 있다. 예술품의 생명은 아우라인데 빛이 반사되는 유리를 통해 볼 수 밖에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해질녘이 되어서야 베드로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창 한가운데로 비쳐 들어오는 빛과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만나 거대한 성당이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평소 장난기 많은 나도 그만 압도되어 엄숙해진 채 성당 문을 나섰다. 주말이면 많은 인파가 몰려 미사를 드린다는 열쇠구멍 모양의 광장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