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리앙스 프랑세즈 반배정과 대체수업

 보르도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입학하기 전 반배정 문제지를 풀어 보내고 처음으로 배정 받은 반은 B1.2반! B1은 이미 통과했지만 문법과 단어, 독해력으로 승부를 봤던 시험이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도 말하기나 듣기, 쓰기 실력이 완벽하게 B1 정도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별 불만 없이 공부하고 있다.


 이번달에 B1.2반에 배정된 선생님은 파리에서 나고 자라 대학도 파리에서 나온 파리지엔느, 나타샤!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경력이 짧아서인지 강의력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 공부할때 대학교 원어 교수님들 강의력이 좋아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튼, 나타샤가 휴가 떠나기 전 마지막 수업을 'Artisan(수공업 장인)의 Atelier(아뜰리에)에 방문해 인터뷰하고 조별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대학에서 조과제 할때면 이런저런 이유로 골머리 앓기가 일쑤라 나타샤의 대체수업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치만 막상 아뜰리에를 방문하니 생소한 직업 세계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내가 언제 현악기 아뜰리에를 방문해 그 장인과 이야기해 볼 일이 있겠나 싶은 생각에 초등학교 갓 입학한 1학년으로 돌아간 마음으로 열심히 이것 저것 물었다.



# 현악기 아뜰리에, Gilles Braem


 Gilles Braem의 아뜰리에에서 만난 장인은 Monsieur Roland, 홀랑 아저씨! Luthier(현악기 장인)와 관련된 단어들을 찾아 미리 준비해간 질문들을 던지고 일터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제작하는 일이 좋아 이 직업을 택한 뒤, 10대 때 3년 6개월 동안의 apprentissage(도제 수업)를 거쳐 Gilles Braem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르도에 몇몇 분점을 가지고 있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악기들은 유럽뿐아니라 한중일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팔린다고 한다. 직업음악인들을 위한 악기는 무려 7-8000유로, 천만원을 호가한다고! 이 곳에서는 음악가들의 현악기 유지보수 업무도 하고 있다. 이 직업의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는, 공짜 연주회 티켓 얻는 것과 내가 만든 악기를 사용하는 연주자를 지켜 보는 것이라며 웃는 홀랑 아저씨 ㅎㅎ. 좋은 현악기를 만드는 일에 대해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담백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느껴졌다.

 

-무슈 홀랑 왈, 모든 현악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같은 것이 없으며 저마다 미묘한 특징을 갖는다.

-정말? 다 똑같이 생겼는데..



#무엇을 배웠나

 3-40분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조별 레포트 작성시간. 교재인 Alter ego B1의 3단원에는 직업과 관련된 다양한 어휘와 텍스트가 제시되고, 문법파트에서는 간접화법의 시제변화를 다루고 있다. 파트를 분담해 녹음해온 홀랑 아저씨의 이야기를 간접화법으로 바꾸어 요약하고 보고서로 작성했다. 보르도 경영대에서 공부한 Jingyu가 주도적으로 할 일을 나눠줘서 보고서 작성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직접 작성한 인터뷰 보고서.

 한국에서는 이런 체험형 수업 방식이 초등학생 때 한 두 차례 있거나 그나마도 효율을 위해 축소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오십이 되어 다시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정말 유익한 수업방식이다. 책상앞에 앉아 코박고 공부할때와는 달리 다른 세상을 보게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한 번더 생각해 보도록 한다. 간접화법과 직업관련 단어 습득은 덤.

 낯선사람과 마주쳐도 항상 인사하고 또 노상 잘지냈냐는 인사를 하는 이곳, 찾기만 한다면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예술분야의 다양한 문화행사가 끊이지 않으며, 대중교통마저 운행않는 휴일이 존재하는 이곳. 초고속 인터넷이나 초고속 배달 문화도 없고 뭔가 하려할 때마다 가져오라는 서류들 때문에 골치아프기 일쑤지만, 오랜 시간 '가치'에 대한 이들의 고민과 그것들이 녹아난 생활을 직접 경험하게 될때마다 기분이 참 묘해진다.

 몇몇 지인들은 프랑스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면 파리나 리옹 등 아는 대도시 몇군데를 대며 왜 그곳이 아닌지 조금 의아해 하는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파리에 가지 못한 것에 조금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보르도를 고른 것에 후회는 없다. 프랑스는 지방분권화가 무척 잘이루어져 문화생활, 교통, 쇼핑, 교육 등 생활면에서 대도시에 비해 조금도 부족한 점 없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팡팡터지는 초고속 인터넷이랑 팔팔 끓인 된장찌개, 매운 떡볶이가 벌써 그리운 요즘이지만 프랑스 특히 보르도에는 이 모든 그리움을 상쇄할만한 매력이 있다.


 



 보르도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수업이 있는 모든 날 방과후에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해두고 있다. 작게는 자막이 있는 프랑스영화 상영부터, 프랑스 요리 아뜰리에나 Grand Théâtre(오페라하우스) 방문 등 다양한 활동들이 한 달 단위로 계획되어 있다. 보르도에 도착해 처음 사귄 중국인 친구, Jingyu(징위)의 제안으로 샤또투어를 신청하게 됐다. 일반 투어은 테마 별로 6유로 부터 2~30유로 까지 다양한데, 알리앙스가 제공한 투어는 5유로에 샤또와 와인저장고인 셰 등을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는 간단한 투어로 시간적/금전적 부담이 없어 망설이지 않고 신청할 수 있었다.


보르도는 남서부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전라남도쯤 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발품 팔아본 결과 행정구역상 보르도는 그리 큰 편은 아니다. 그치만 아끼뗀 주의 주도로 인근지역의 생활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사람들은 보르도 중심지(Centre-Bordeaux)를 둘러싼 인근 포도주 생산지를 통틀어 보르도라고 부른다. 


- 파란 표시가 보르도 중심가. 중심가를 기점으로 3개의 트램 노선이 펼쳐져있다. 버스는 배차간격이 커서 트람이 고장났을 때가 아니면 이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성씨에 저마다 본가, 가문이 있는 것과 비슷하게도 프랑스의 포도주에도 가문이 있다. 바로 샤또라고 불리는 포도주 생산지다. 다양한 포도주의 가문인 '샤또 Château'는 불어로 중세의 성이나 저택을 의미하는 데, 실제로 보르도에 위치한 유서깊은 샤또들은 몇백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해왔다고 한다. 내가 첫번째로 방문하게된 샤또는 위 지도에서 자주색 부분 Haut-Medoc(직역하면 높은 메독)에 위치한 샤또 뒤 따이앙! 메독 지역이 완만한 경사지대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지대가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이만 설명은 줄이고 비루한사진 감상 시간 ㅎㅎ 포도주 무지랭이지만 아는 바를 영혼까지 끌어 모아 적어본다.

-쾌청한 보르도 날씨! 따로 포도밭은 안보여줘서, 아쉬운대로 줄지어 선 아기 포도나무들 구경.


- 가이드 투어 시작. 열심히 듣는 알리앙스 학생들

- 가이드 언니 : 어서와. 이런덴 처음이지? 너네 지금 딱 서있는 여기가 바로 16세기에 지어진 와인셰(셀러,저장고)야.


- 와인 저장통만 최근 거고, 이 건물은 16세기 그대로야. 좀 서늘해. 벽이 더럽지? 습기 차서 버섯까지 폈어.

- 우리가 청소하기 싫어서 그런거 절대아니고. 이 버섯핀 오래된 벽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서 리모델링 불가야. 와인

에는 버섯 안피니까 걱정마^^*


- 포도를 착즙 및 가공하는 설비들이야.

- 알리앙스 학생일까? 불어 설명이지만 열심히 듣는 에스파뇰 아주머니!


- 긴 설명 듣느라 수고 했어. 자, 그럼 한잔시작할까? 처음으로 마시게 될 와인은 La Dame blanche 라 담 블랑슈(블량슈 아줌마), 화이트와인이지. 다 마셨으면 레드와인도 맛 보도록 해.

[코멘트] 와인 무지랭이라 처음으로 마신 화이트 와인은 라담 블량슈가 되었다. 레드와인 보다는 포도주 특유의 떫고 강한 맛이 좀 더 옅고, 대신 꽃? 과일? 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스테이크 보다 가벼운 다른 식사를 할때 곁들이면 좋을 것 같다. 

- 첫번째는 demi-bouteille(드미 부테이유, 반병), 두번째는 bouteille(부테이유, 한 병), 세번째는 magnum(마그넝, 큰술병), 네번째는 double-magnum(두블 마그넝, 큰큰 술병) 그리고 네번째는 géroboam(제호보앙, 큰큰큰 술병) 이라 불려. 우리가 평소에 마시는 건 두번째, 부테이유야.

[코멘트] 프랑스어 듣기 실력을 늘리려고 DVD를 빌려다 보는데, 영화에샤또 투어때 본 두블 마그넝 크기의 와인병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Coco avant Chanel(샤넬이 되기 전의 코코)이라는 영화였는데, 파티 장면에서 주최자가 와인을 나누어 줄때 큰 와인병, 아마도 두블 마그넝?이 등장한다


- 징위가 찍어준 기념사진ㅎㅎ

와인 저장고를 둘러보고 포도주 시음 까지 마치면 포도주 쇼핑 시간이 찾아온다. 집에 사다둔 포도주 한 병이 있어서 망설이다가 구입하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에 저마다 손에 한 병씩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조금 후회가 됐다. 방문한 샤또의 포도주 맛이 나쁘지 않다면 사다두고 마시며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렸을 때 방문했던 제주도 감귤 농장이 생각 났다. 농장 둘러보고 귤, 한라봉, 동충하초(??) 분위기에 휩쓸린 강매 ㅎㅎㅎ.


마지막으로, 무지랭이가 알려주는 보르도와인을 고르는 작은 팁! '보르도 와인은 빈티지를 많이 탄다'고 한다. Vintage 빈티지는 패션계에서 의도된 비루한 차림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고, 해마다 수확된 포도의 작황에 따른 품질을 의미함.ㅎㅎ '빈티지가 좋다'고 하면 수확된 포도주의 품질이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가 된다. 아래 사진은 산지에서 직송하는 보르도 레드와인 빈티지 분류표 영문본!. 최근 와인 중에서는 2008~2010년 와인이 좋은 빈티지다. 이 외에 가볍게 좋은 포도주를 고르고 싶다면, 보르도 시내 곳곳에 위치한 거대한 와인전문 판매점을 찾아가 가격대를 정하고 추천받을 수 있다. :D


 그 밖에, 샤또 투어 정보는 보르도 관광안내소가 대부분 주관 하고 있다. 단체로 가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예약하고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 다음번 샤또 투어 때는 같은 방식으로 생산되지만 서로 다른 빈티지를 맛보는 버티컬 테스트, 같은 빈티지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는 와인을 비교해보는 허리즌털 테스트를 경험해보고 싶다.





 


# 생활터전이 된 보르도 감상


 보르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트램B선의 감베따역에 내릴때마다 목적지는 잠시 잊고 곧장 큰 나무와 대성당의 존재감에 압도된다. 유럽 여행할때도 매번 느꼈던 거지만 이런 오래된 건축물들 사이에서 일상을 사는 유럽 사람들이 부럽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뿐. 유학 온 나에게 보르도는 관광지가 아니라 앞으로 8개월간 머물게 될 생활 터전이다. 다시 처리해야 할 일을 찾아 발길을 재촉한다. 거래 은행, 휴대폰 통신사, 학교를 비롯한 각종 편의 시설들이 이 역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체류증, 은행계좌 등 각종서류를 준비하다 문제가 생겼다. 말도 잘 안통하고 아무도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 이곳.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인 거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고싶어졌다. 1년 전 여행 당시에는 낭만적으로만 다가왔던 유럽의 거리들이 음울한 마음을 따라,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채 정체된 것처럼 느껴졌다



# 변덕스러운 날씨


 맑은 날의 보르도는 낡은 건물들의 색감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낮은 건물 탓에 하늘을 손으로 잡아 당겨 구름을 끌어 올 수 있을 것만 같다. 반대로 추적추적 비가오는 날은 굉장히 우중충하다. 잔뜩 깔린 구름이 볕을 막아 낮인데도 어둑어둑하다. 하늘 역시 색이 없다. 베이지색 건물도 습한 날씨가 다 빨아 들여 빛이 바랜 색으로 바뀌어 버린다


 보르도 날씨는 오락가락이 심하다. 맑아졌나 싶다가도 갑자기 흐려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인다. 비맞는 것이 싫어 우산을 챙겨다니지만 변덕스러운 날시에 장단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를 몇차례 반복하다 포기하고 빗방울 정도는 그냥 맞고 다니기가 일상이 되었다.




갑갑한지 종종 이런다. 돼지고양이.

첨엔 점프해서 방문 마구 열고 들어오더니, 캐리어로 막아두니 그러기를 멈췄다. 대신 방문 열고 나가기만 하면 뚫어져라 감시당하는 나의 유학생활 휴.


 우리나라의 개고기 문화를 야만적이라고 비판해 물의를 일으켰던 나라답게 프랑스에는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파트 앨리베이터에서 사냥개 같이 생긴 개를 마주치고 너무 놀라서 소리 질렀는데 사랑스러운 우리개 놀라게 왜그러냐는 반응. 휴..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엘리베이터 문앞에 서는 일이 절대 없어졌다. 보르도에 머문지 열흘이 되어가는데,큰 개일수록 훈련이 무척 잘되어 있다. 트램이나 버스에서도 종종 아무렇지 않게 데리고 탄 개들을 볼 수 있으니 이점은 다행이지 싶다.  


 보르도 도착전부터 머물기로한 홈스테이집과 연락이 제대로 안이루어지더니 결국 도착후 문제가 생겼다. 유학원은 수속비 다 받고 비자도 나왔으니 거의 나몰라라에 가까웠고.. 유학원들에 대한 불신을 담은 블로그들을 많이 봐서 애초에 별로 기대도 안했지만. 여튼 도착해서 짧은 불어로 픽업 나와주실분을 구하고 짐을 옮기고, 홈스테이집을 변경해야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시설 좋은 아파트여서 만족스러운가 했더니 웬걸, 고양이가 있다!


 장시간 비행, 홈스테이 문제, 몸무게에 육박하는 무거운 수하물들..

녹초가 되어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고양이가 제멋대로 문을 열고 방을 오가니 신경이 곤두섰다. ㅠㅠ.. 홈스테이집을 다시 옮겨달라고 말해볼까, 별 생각을 다했지만 캐리어로 문 막아 두면 방에는 큰 문제는 없으니 견뎌보기로 했다. 고양이 무섭다며 옮겨달라했어도 아마 우리 예쁜이(mon chéri)한테 왜그러냐는 반응이었을게 틀림없다.

 피할수없다면 즐겨라. 본의아니게 고양이 컬렉션을 모으게 됐다. 고양이와 한집살이 하는데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적당히 거리 두면서.아직은 무섭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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